본문 바로가기
내 안의 작가놀이

단편소설 - 자리

by 새벽 4시에 흐르는 전기 2025. 4. 11.
반응형
SMALL

단편소설: 자리

편의점 안, 그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.
야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3개월쯤 됐을 때,
나는 그를 '구석 자리 남자'라고 불렀다.

커피 하나, 삼각김밥 하나.
그게 전부였다. 늘 그랬다.
말도 없고,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.
들고 있던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던지듯 버리고 나가던 뒷모습.
지쳐 보였고, 무관심해 보였다.

“맨날 저러고 앉아 있으면 뭐 하러 오는 걸까.”
같이 일하던 친구가 물었다.

“그냥, 어디든 있어야 하니까.”
나는 무심하게 답했다. 그러곤 다음날도, 그다음 날도
그는 똑같이 그 자리에 있었다.

어느 날, 그는 오지 않았다.
나는 잠시 멍하니 그 자리를 봤다.
커피 자국도, 삼각김밥 비닐도 없었다.
그저 깨끗한 빈자리.

그 사람은, 어쩌면 하루 중
자신이 존재한다고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순간을
그 자리에 남겨두고 있었는지도 몰랐다.

그러고 보니, 나도 요즘은 그 자리에
누가 앉아 있는지부터 먼저 확인하게 되었다.

반응형
LIST

'내 안의 작가놀이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단편소설 - 휴대폰 진동  (0) 2025.04.12
단편소설 - 거리감  (1) 2025.04.10
단편소설 - 고기 반찬  (0) 2025.04.09
단편소설 - 면접 37번째  (0) 2025.04.08
단편소설 - 월급날  (1) 2025.04.07